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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소설/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상영중/OTT 개별구매가능

soosideas1222 2025. 2. 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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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신형철 문학평론가님의 추천서를 읽고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워낙 약자에게 따뜻한 시선을 주는 글을 많이 쓰셨기에

<맡겨진 소녀>를 다 읽고 나니 그 뻣뻣한 양장 커버가 이야기를 (특히 소중한 결말을) ‘보호’하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이번 소설도 그렇다. ‘키거니언 엔딩’이라고 부르고 싶은 그것의 본질은 무슨 반전 같은 게 아니다.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나는게 아니라, 감히 기대해도 될까 싶은 일이 실현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능성이 서사의 필연성으로 도약하는 지점에서 소설이 끝날 때, 우리는 우리가 이세계를 포기할 수 없은 이유를 하나 얻게 된다. 이 작가가 단편 분량의 소설을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것에 나는 불만이 없다. 이런 결말 뒤에, 감히, 어떤 다른 이야기거 시작 될 수 있단 말인가.


클레어 키건의 4권의 작품 모두 얇지만 예리하고 우수하다는 평을 받았다
이 책으로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으며 역대 부커상후보에 오른 가장 짧은 소설로 알려졌다고 한다.
영화화된다고 하니 기대해 본다
아니 이미 개봉했다고 한다 심지어 상영 중이라니

작년에 개봉했구나 아직 서울상연관들이 있다

웨이브/유플러스모바일/쿠팡플레이에서 구매가능

상영관이 많지는 않지만
예술영화위주의 영화관에서는 아직 하는 듯
시간이 되면 영화관에서 보는 것도 좋겠다

등장인물


미시즈 월슨 — 펄롱의 엄마가 임신을 하자 본인의 집에서 살 수 있게 해 줌 (개신교)

빌 펄롱 — (가톨릭)(아일랜드에서 윌리엄(빌)은 보통 개신교이름이고 가톨릭이름으로는 잘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주석참고)
엄마가 미시즈 월슨댁의 일꾼으로 일하던 중 펄롱을 임신해 낳음
아버지를 모른 채로 월슨댁에서 나고 자람

아일린 — 펄롱의 아내
펄롱의 5명의 딸 캐슬린/조앤/실라/그레이스/로레타

2

   가끔 펄롱은 이렇게 아일린 곁에 누워 이런 작은 일들을 생각했다…….한밤중에 깨어 아일린이 곁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는 걸 느끼며 누워 있다보면 생각이 빙빙 맴돌며 마음을 어지럽혀 결국 아래층으로 내려가 주전자를 불에 올리고 차를 끓여야 했다. 펄롱은 찻잔을 손에 들고 창가에 서서 거리를 내려다보고 멀리 보이는 강을 바라보고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일을 구경했다……. 펄롱은 마음 한편이 공연히 긴장될 때가 많았다. 왜인지는 몰랐다.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멀리 가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시내에서, 시 외곽에서 운 없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덩달아 내 마음도 불안해진다
추운 공기가 손발 끝을 스치는 느낌이다
앞에서 묘사한 이웃들의 힘겨운 하루들과
고난한 삶의 운 없는 사람들의 처지가 안타까워 잠을 못 이룬다

3


가족 모두가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준비하면서

늘 이렇지, 펄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 — 아니면 그저 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버터와 설탕을 섞어 크림을 만들면서도 펄롱의 생각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일요일, 아내와 딸들과 함께 있는 지금 여기가 아니라 내일, 그리고 누구한테 받을 돈이 얼마인지, 주문받은 물건을 언제 어떻게 배달할지,  ……. 내일이 저물 때도 생각이 비슷하게 흘러가면서 또다시 다음 날 일에 골몰하리란 걸 펄롱은 알았다.

곧 펄롱은 정신을 다잡고는 한번 지나간 것은 돌아오지않는다고 생각을 정리했다. 각자에게 나날과 기회가 주어지고 지나가면 돌이킬 수가 없는 거라고, 게다가 여기에서 이렇게 지나간 날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게, 비록 기분이 심란해지기는 해도 다행이 아닌가 싶었다. 날마다 되풀이 되는 일과를 머릿속으로 돌려보고 실제로 닥칠지 아닐지 모르는 문제를 고민하느니보다는.



펄롱의 단단한 내면을 알 수 있는 독백이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펄롱은 오늘의 의미를 고민하며 생각에 잠긴다
영화 패터슨이 생각났다


사실 아직 보진 않았지만ㅎㅎ
그리고 이 무거운 소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겠지만
이동진님의 추천을 본 듯하다. 이번기회에 시간을 만들어봐야겠다.

4

그해 12월은 까마귀의 달이었다로 시작하는 4장
그런 까마귀 떼들이 밤만 되면 수녀원 주위에 모여든다

드디어 수녀원의 세탁소가 나온다
앞에서 계속 기저에 깔렸던 불안감이 표면으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펄롱은 수녀원에서 갇혀 있는 듯한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을 마주하고
애써 무시하며 석탄을 건네주고 나오지만

당황한 채로 길을 잘 못 들어 엉뚱한 방향으로 향한다
하나하나 되짚어보며 깨닫는 펄롱

묘사 엄청 현실적이다
신경을 안 쓴다고 생각하지만 온정신이 거기에만 가있는 상황
길을 잃어 노인에게 물어본 장면이 인상적이다

펄롱은 차를 세우고 노인에게 인사를 했다
“이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이길?” 노인은 낫으로 땅을 짚고 손잡이에 기댄 채 펄롱을 빤히 보았다.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

모든걸 다 아는 듯한 노인의 말

그리고 그날밤 아일린과 자신의 본 것을 말해주고
의견을 주고받는다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만약에 우리 애가 그중 하나 라면?이라고 묻는 펄롱에게 답한 아일린의 말



7

크리스마스이브
아일린에게 선물한 구두를 한쪽에 낀 채
수녀원으로 향한다

그동안 마음속에서 계속 되뇌었던
삶의 의미를 찾는다

펄롱은 미시즈 월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미시즈 월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더 옛날이었다면, 펄로이 구하고 았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었다. 이걸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결국 펄롱은 자신을 구한다
앞으로 최악의 상황이 남아있음을 알지만 순진하게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생각하고 믿었다
밝은 빛이 펄롱에게서 새어 나온다


옮긴이의 말처럼
다시 돌아와 첫 장을 읽으면
작가의 암시가 눈에 들어온다

이 짧은 소설은 차라리 시였고, 언어의 구조는 눈 결정처럼 섬세했다. 잘못 건드리면 무너지고 녹아내릴 것 같았다. 클레어 키건은 무수한 의미를 압축해 언어의 표면 안으로 감추고 말할 듯 말 듯 조심스레 이야기한다.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고 미묘하게 암시한다. 두 번 읽어야 알 수 있는 것들, 아니 세 번, 네 번 읽었을 때야 눈에 들어오는 것들도 있다

-옮긴이의 말-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라는 제목이 어울리는 책이었다
소설 속 인물들의 행동들, 생각들,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조차 사소하다
하지만 그건 겉으로 봤을 때고
속은 너무너무 커서 표현조차 쉽지 않다

원서로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어떤 상황에도 착한 사람이 가장 센 사람임을 보여줬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사람
그만큼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착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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